Saturday, September 26, 2015

[Cap.Jang History] 83.Up-roo, Sukshin had a different language with Sam-Han ( 읍루, 숙신은 삼한과 말이 달랐다)


* 정리
1. 읍루는 반도에 살았지만 말과 풍속이 달랐다.
2. 방 한가운데 똥통을 만들어 놓고 살았다.

* 의견
1. 고구려가 한국사라면 만주족, 여진족도 부분적으로 한국사로 봐야한다.
2. 현재 국사교과서는 단일민족 중심주의를 버리고 여진과 거란인들이 한반도로 많이 귀화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 세부내용(인용)
후한(後漢)에서 오호십육국 시대 사이에 연해주와 그 부근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후한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1]

읍루는 옛 숙신의 나라이다. 부여 동북쪽 천여리에 있다. 동쪽으로는 큰 바닷가에 임하고 남으로는 북옥저에 접하며 가히 북쪽 끝은 알 수 없다. 땅은 산이 많고 험하며, 사람의 형상은 부여인과 닮았으나 그 말은 각각 다르다. 오곡과 베가 있고 붉은 옥이 나오고 담비가 좋으며 군장은 없으나 읍락 각각에 대인(大人)이 있다.

산림 사이에 살며 몹시 추우며 항상 토굴에 있어 깊은 것을 귀하게 여기고 큰 집은 사다리 아홉 개에 이른다. 돼지 기르기를 즐겨 그 고기를 먹고 그 가죽으로 옷을 입는다. 겨울에는 돼지 기름을 두껍게 나누어 몸에 발라 이로써 바람과 추위를 막는다. 여름에는 벌거벗고 앞뒤를 베로 가린다. 사람이 냄새가 많이 나고 더러움을 알지 못하여 변소를 가운데 짓고 그 주위에 산다.

한나라가 흥한 이후로 부여에 속하고, 무리는 비록 적으나 용력이 많고 산세가 험한 곳에 살고 또한 활을 잘 쏘니 능히 사람의 눈을 맞추었다. 활의 길이는 네 척이고 노와 같은 힘이 들고 화살은 싸리나무를 사용하고 그 길이는 일척팔촌이다. 푸른 돌을 화살촉으로 하고 촉에는 모두 독을 발라 보통 사람은 즉사하였다. 편안히 배를 타고 도둑질을 좋아하니 이웃나라에서 두려워하고 근심하였으나 능히 복속시키지 못하였다. 동이와 부여는 음식의 종류를 모두 조두그릇을 사용하는데, 오직 읍루만은 그렇지 않아 법과 풍속이 가장 기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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