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15, 2016

[Cap.Jang History] 101. Ahn Jung Geun assassinated Ito Hirobumi for Japan not Korea (アンジュングンは何故伊藤博文を打ったの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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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구 위일비위한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안중근의 이토를 제거한 거사가 궁극적으로 일본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글로벌하고 거국적인 의미로 볼 수도 있고
처음부터 조선이나 한민족의 이익은 알 바 아니다라고 좁게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자료가 이토 히로부미 라는 역적을 제거하고 일본천황을 위한다는 안중근 만의 개인적인 
오해와 편집증을 보여준다는 점이다.(1편의 안중근 유언 13번 15번 항목 참조할 것)
-2011년 발견된 안중근의 친필 필적-

독립기념관, 일본신문 자료 공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이유를 한시 형식을 빌려 표현한 친필 기록(사진)이 발견됐다. ‘곡돌에 섶을 제거한 이는 혜택을 바라지 않는데(곡돌사신무견택)/ 머리를 태우며 이마가 짓무른 이가 상객이 되었구나(초두난액위상객)/ 초(楚)를 위한 것이지 조(趙)를 위한 것이 아니라네(위초비위조)/ 일본을 위한 것이지 한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네(위일비위한)’
<오사카마이니치신문> 1910년 2월22일치 7면에 ‘안중근의 필적’이란 제목으로 실린 이 한시는 안 의사가 그해 2월14일 사형 선고를 받은 뒤 일본인 변호사인 미즈노 기치타로의 수첩에 직접 쓴 것이다.
독립기념관(관장 김주현)이 7일 펴낸 <일본신문 안중근 의거 기사집>(전 2권)의 제2권에 이 기록을 수록됐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윤소영 연구원은 “<한서>의 ‘곽광전’에 나오는 고사성어인 ‘곡돌사신’은 화근을 미리 없앰으로써 재앙을 미리 막는다는 뜻으로,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라는 땔감이 한국이라는 연돌(한국 침략)에서 불을 내지 않도록 막고 동양이라는 집(동양평화)을 태우지 못하게 하고자 했음을 밝힌 것”이라고 풀이했다.
또 후쿠오카현 모지에서 발간된 일간지인 <모지신보>(1892~1938년)의 기사집에는 ‘안중근 공판 속기록’ 전체를 비롯해, 안 의사의 의연한 태도가 일본인에게 ‘메이지시대의 애국지사의 면모를 엿보게 했다’(1910년 2월24일치 ‘안중근의 일면’), ‘안중근이 이토를 쏜 총탄의 간격이 각각 약 6㎝를 넘지 않을 정도의 명사수’(1910년 11월1일치 ‘가와카미 총영사 귀국’)라는 기사 등 하얼빈 의거와 안 의사 재판 기록이 비교적 자세하게 담겨 있다.
* 관련기사 -한겨레신문
Cap. Jang's history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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