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 신을 인간으로서 해부한 작품
1. 서론 - 작품의 기본구조
본 작품은 난중일기를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살을 붙인 작품이다. 저자는 이순신의 시점에서 사건 전개와 심리묘사를 하며 난중일기만으로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하여는 작가의 개연성있는 허구를 더하여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이순신의 심리를 묘사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2. 본론
1) 기존의 이순신론과 작품의 이순신을 비교함
나는 이순신 연구자는 아니지만 이순신에 관한 연구자료나 역사이야기를 읽는데 관심이 많다. 이순신에 관한 가장 오래된 고전으로 꼽히는 춘원 이광수의 성웅 이순신이 있는데 과거 군사정권은 이 작품을 기반으로 이순신의 신격화를 교육했다고 한다. 나는 현재 30대 중반으로 그러한 이념을 교육받은 세대이며 당시의 이순신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제1기라고 정리하고자 한다. 해당 시점에서 이순신은 구국의 영웅, 조선은 이순신의 원맨팀으로서 그는 단독으로 오합지졸인 팀을 이끄는 군계일학의 지도자였다.
이후 나는 대학교와 공군부대에서 좀 더 폭넓은 독서를 하여 이순신을 비판하고 신격화된 거품을 빼고자 하는 저작들을 읽었고 반대로 비판의 대상이었던 원균을 복권하는 움직임을 접하였다. 분류하자면 이 때를 제2기로 하겠다.
제3기에서는 헤겔철학의 정반합의 과정처럼 이순신이 재평가되어 "그래도 역시 이순신."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을 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는 동시에 무시되었던 조선의 다른 인물들과 선조의 역할도 함께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알고보면 모두모두 잘했다."라는 의견도 접하였다.
이 3기에 해당하는 이순신에 관한 시점이 현재까지 진행중이며 1기의 신격화를 배제하고 이순신을 하나의 인간으로서 보려는 시도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작품 '칼의 노래'는 인간 이순신에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위인전기식의 이순신 서적들과는 접근이 다르다.
2) 한국의 폐쇄적 영웅신화와 서양의 개방적 영웅신화
각 나라와 민족마다 많은 영웅신화가 존재했다. 한국의 경우, 전통적인 영웅론이란 앞에 서술한 1기의 이순신을 보는 관점이다. "알에서 태어나고 어려서 천자문을 읽을 줄 알고 기운이 장사."같은 서술이 전통적인 영웅신화에서 자주 등장하며 출발부터가 범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 영웅이다. 이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지배계급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고전에서 뿐만이 아니라 한국인의 일상생활에도 강하게 남아있다. 현대에도 한국의 교육현장과 인재육성에는 천재론이 지배한다. 공부를 포함한 대부분의 영역에서 사람의 성패는 천재와 둔재라는 타고난 적성에 따라 결정된다는 믿음이 있는데 이것이 삼국시대 영웅론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신라의 골품제, 중세 고려, 근세 조선을 거쳐왔지만 한국인들은 후천적 노력보다 선천적인 영웅론과 당위적인 천재론을 신봉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반면 서양의 영웅론은 주인공이 그저 잘나서 모든 걸 한 방에 해결했다는 식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저명한 신화 연구학자 캠벨에 의하면 영웅은 초기에 시련을 겪는다. 물론 보통사람이 겪는 시련을 넘어서는 가혹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고향을 떠난다.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이 속했던 공동체, 민족이나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고 번영하게 할 보물을 갖고 돌아온다. 이러한 발상은 후천적인 노력과 성과에 따라 영웅이 되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희망을 준다. 이러한 서사구조가 신분이동이 개방적인 사회의 영웅신화인 것이다.
3) 작품의 의의1 - 사람들과 가까워진 인간 이순신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의 이순신은 어떤 인물인가? 앞서 정리한 전통적인 영웅신화를 접목한 기존의 작품들에서 이순신은 성웅, 충무공, 무신 혹은 해신으로 묘사되며 무적의 인간이고 초월적인 능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괴로울 일이 없다. 위기에 몰린 듯 하지만 모든 것은 계산된 것이고 언제나 승리하는 자이다. 백의종군이나 온갖 고문에도 끄떡않는 철인이며 로보트와 같은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마지막 죽음마저도 계산된 순국으로서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하며 너무나 간단하게 육신을 초월한다. 그곳에 인간 이순신은 없었다.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신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다르다. 이순신을 속속들이 알기에는 사료로서 내용이 간략한 난중일기에 기반하고 있지만 작가는 인간 이순신이라는 행간을 읽어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작품에서 그는 인간이다. 백의종군 중에 모친상을 당하여 슬퍼하고 왜군에게 참살된 아들에 대한 꿈을 꾼다. 심지어 앞에 왜군, 뒤에 그를 의심하는 선조를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고민하기도 한다. 원균과의 갈등은 극에 달하여 노이로제 수준이었고 선조로부터 받은 고문과 전투중 부상의 후유증으로 고생한다. 잠자리를 함께 한 첩이 세 명 정도 있었고 굶어죽어가는 병사들을 보며 무거운 마음으로 밥을 먹기도 한다. 칠천량 해전이후 괴멸된 조선수군의 책임자로 재임용되어 기지도 전함도 병사도 없는 해군사령관의 착잡한 마음을 기록하기도 한다. 7년간의 전란동안 전투가 일상생활이 되어 적을 죽이는 것이 나락을 베는 것처럼 무덤덤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영웅 이순신의 하루는 바로 나의 하루와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4) 작품의 의의2 - 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이 보통사람들에게 주는 힘
훌륭한 작품이란 무엇인가? 읽는 재미를 넘어서 독자의 삶에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훌륭한 작품이라고 정의한다면 이 작품은 충분히 그런 힘을 갖고 있다. 영웅은 무적이고 초능력자로 받아들여지던 나의 어린 시절, 나도 무턱대고 영웅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영웅은 승자인 동시에 고통의 피안에 도달한 초월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보면 영웅도 일반인과 똑같은 사람이고 비슷한 괴로움을 겪는다. 오히려 그 고통의 짐이 더 크고 규모가 크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의 삶은 순탄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시대는 바뀌어 이제 장엄하고 진중한 영웅신화들은 인간의 이야기로 분석되고 있다. 나를 비롯한 장년층 세대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세뇌된 낡은 영웅신화에서 벗어나 즐겁고 순탄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본 작품은 이순신도 그저 인간이라는 내용을 전달하고 사람들의 경외심만 없앤 것은 아닐까? 차라리 그를 신으로 모시던 그 때 사람들은 이순신으로부터 더 큰 위안을 얻지 않았을까?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인간 이순신이 사람들에게 주는 새로운 힘에 주목해 보자. 이순신의 이야기에서 영웅신화를 배제하고 나면 이순신은 우리 자신이 된다. 이순신이 겪은 고통과 갈등은 우리모두의 모습이 된다. 앞에는 왜군, 뒤에는 선조가 목에 칼을 대고 그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이순신의 모습은 오늘날 자신을 미워하는 직장상사와 경쟁자 사이에 끼인 직장인의 모습이거나 남편과 시어머니 사이에서 갈등하는 며느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조선수군이 전멸하고 다시 수군통제사로 부임한 그의 심경은 밑천을 다 잃은 자영업자들이나 시험에 낙방한 수험생들의 마음일 것이다.
현대사회는 과거와 달리 친족집단이나 국가에서 개인의 삶을 완벽히 통제하며 모든 것을 결정해주지 않는다. 개개인의 인간관계, 진로, 혼인, 재정상태에 관한 결정들은 개인의 자유인 동시에 책임이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모두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인 것이다. 이순신이 더 이상 신이 아니고 인간이기에 우리는 그의 삶에 더욱 공감할 수 있고 또한 그를 통하여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돌파구를 찾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아직도 소소한 개인적 문제를 극복하고자 할 때 인간 이순신의 지혜와 의지를 빌리고 싶다. "신에게는 아직 12만원이 있사옵니다." 같은 문구를 중얼거리며 저력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나는 앞으로도 그 대사를 몇 번이나 외쳐야 하는가?
Cap. Jang's Korean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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